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마23:29-32)
우리라면 그리 하지 않았을 텐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전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옛 시대의 어리석은 사건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이야기는 단지 성경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복된다. 예로부터 이어진 사고가 고정관념을 만들고, 그 고정관념이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무조건 거부하고 핍박하기보다 한 번쯤은 재고해 보고 지켜본다.
교법사 가말리엘을 보자. 그가 말하기를 "바리새인들이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3-39)고 했다.
지나간 시대 사람의 옳고 그름은 판단하기 쉽다. 또한 그 판단은 때로 매우 후하고 넉넉하기까지 하다. 과거의 사람은 지금 나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지 않고, 더 나아가 지나간 시대의 사람을 인정함으로써 자기의 가치까지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사람에게는 후하기 어렵다. 우선 그 사람의 사고와 행동이 자신의 사고와 행동에 제약을 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기에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전환시키는 수고가 매우 커지기 때문에 차라리 배척하기가 쉽다. 사람들이 지나간 시대의 어떤 사람을 공들여 평가하고 때로 위인으로 받드는 데 인색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상들은 왜 그랬을까 의아해 하지만 정작 자신은 후대에 위인이 될 만한 인물을 인정하기보다는 배척하고 평가에 인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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