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이야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마27) - 정광교회 박승현

728x90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定價)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마27:1-10)

 

가롯 유다의 죽음을 통해서 보는 뉘우침과 회개
'뉘우치다'는 제 잘못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을 나무란다는 의미이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성경 언어로 사용된 헬라어 「메타멜로마이」(μεταμελλομαι)는 뉘우침이고, 헬라어 「메타노에오」(μετανοεω)는 회개의 의미로 쓰인다. 뉘우침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염려와 불안에 싸여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반면 회개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시인하고 처벌 또한 마땅한 것으로 여기되,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하는 데 초점이 있다. 회개는 새로운 삶에 마음을 두는 반면 뉘우침은 과거에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인간의 사고는 편협하기 나름이라 끊임없이 수고를 해야 거기서 벗어나 살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생각, 사고의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떤 실수나 잘못도 용서하신다고 한다. 성령 훼방죄만 빼고는 예수를 반대한 죄, 핍박한 죄조차 용서하신다고 하였다.

예수가 하나님이므로 예수를 모독한 죄는 하나님을 모독한 죄, 곧 신성모독이다. 예수 당신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훼방은 여러 의미가 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나왔지만, 유다는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지 않은 것과 같다.

예수가 한 분이시듯 그분을 팔아넘긴 성경 속의 유다도 한 명뿐이다. 그러나 사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성경에 등장하는 유다는 존경의 입맞춤으로 예수를 지목하여 팔아넘길 만큼 교활했으나 마지막까지 교활하지는 않았다. 비록 회개하지는 못했으나 자기 잘못을 끝까지 정당화, 합리화시키지는 않았다.

유다의 잘못이 용서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유다의 더 큰 잘못은 저의 죄를 짊어지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우리가 유다처럼 죄에 죄를 더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면, 저의 잘못을 후회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다. 다만 과거의 잘못된 삶을 그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면서 죄인 된 과거를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