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비자가 저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67-75)
참선지자는 세상일을 알아맞히는 게 아니라 진리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선지자는 천기를 분별하여 날씨가 맑고 흐림을 아는 자와 같다. 시대의 표적이나 사회현상을 분별하여 세상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해 맞게 될 재앙을 피하게 하려고 세상을 향해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선지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진 대제사장과 장로의 졸개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때린다. 그러면서 우리 중에 누가 너를 때렸는지나 맞춰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한다.
신명기 13장 1-5절을 보자. 후회할 것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이 세상 욕심만을 부추긴다면, 그 선지자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고 희한한 능력을 선보일지라도 죽이라 하였다. 하늘을 날고 구름을 움직이며 비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선지자가 나타났다고 하자.
그러나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세상사람들을 위하는 봄볕 같은 사랑의 마음이 없으며 또 그런 사랑을 사람들이 갖지 못하게 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런 능력자, 선지자는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참된 선지자는 점쟁이처럼 다른 사람의 앞일을 알아맞히거나 눈이 번쩍 뜨이는 일을 벌이는 행사꾼이 아니라 사람들이 진리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정표 역할을 하는 사명으로 삼은 자이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베드로
베드로는 스승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던 장담이 무색하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한다. 생각으로는 올바르게 살고 싶고 효도하고 싶고 바르게 행동하고 싶다. 그러나 생각만으로 하는 것은 검증된 것이 아니다. 다짐이나 생각은 현실 앞에서 무너지기 쉽다. 물론 생각이 있어야 행동을 취하겠지만, 그것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야고보 장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생각은 믿음을 확립시키는 데 도움은 된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베드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반석 같았던 자기 믿음, 믿음의 생각은 그 시대의 비천한 여종(비자) 앞에서 가볍게 무너졌다. 이 세상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한 뒤에 어떤 태도를 갖느냐 하는 점이 실로 중요하다. 현실세계에서는 시비를 가리고 자기 잘못에 책임을 지면 어지간히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는 영혼의 구원과 관계가 있다. 베드로는 잘못을 시인하고 통곡한다. 바른 신앙생활은 올바른 삶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시인하고 통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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