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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마26)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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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에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제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마26:47-50)

신앙을 팔아버린 유다
삼 년여 동안 말씀을 나누며 고락을 같이했던 제자이며 동료인 유다가 자기와 뜻이 맞지 않는다 하여 일순간 돌아서서 예수님을 세상에 팔아버렸다. 자기와 뜻이 다르면 함께 걸어가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나아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을 가실 수 없도록 조치한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 유다에게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자.

유다는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앙을 팔았다. 세상적 표현으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신앙에 입문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며, 신앙생활을 쉬거나 신앙과 관계없이 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 순간에도 신앙을 떠나서 살 수는 없다. 자기의 생각이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를 두고 "율법 없는(신앙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신앙)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4-15)고 했다. 종교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안 붙이고의 차이만 있을 뿐 자기 양심의 신앙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유다는 신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앙을 팔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 자신의 신앙을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신앙에 입문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앙을 판 자에게 남는 것은 잠깐의 편안함을 뒤따르는 영적 고뇌밖에 없다. 팔린 예수도 그분을 팔아버린 유다도 그 육체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없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간 삶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어떠한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마다 자학할 수밖에 없었을 유다를 떠올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육체의 소욕만을 위해 성령, 올바른 이성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삶을 살면, 머잖아 후회와 입을 맞추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그분 앞에서 작은 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큰 죄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것만큼 살아가려는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신앙을 파는 자, 자기 양심을 속이는 자,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확신하는 자는 그보다 더 큰 죄를 범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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