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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풀이

전도서를 읽는 요령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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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를 읽는 요령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도서 1:2-3)

 

전도서를 처음 접하면 육신을 입은 삶의 하찮음, 사람이 가진 지혜의 헛됨에 대한 말씀이 절절해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오해할 지경이다. 그러나 전도서가 전하는 말씀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아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든 삶, 업적과 지혜는 헛되며,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이 걸어간 길이 헛되다는 것이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14 참조)라는 말씀을 보자. 전도서가 지적하는 헛되고 헛된 것이란 하나님 없는, 하나님을 모르는 해 아래서의 모든 수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6-19)에서 보듯이 참 하나님과 당신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만 거듭 나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이다.

헛되고 헛된 것,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자는 헛될 뿐 새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 하나님을 알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은혜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보니 해 아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궁구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깨닫지 못하리로다”(전8:17)했다.

사람의 이성적 관점으로는 분명 맞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상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악에 이겨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롬12:1-21)고 했다. 이보다 명쾌한 말씀이 없다.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추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συβιβαξω; 쉼비바조, 연합, 증명) 증명하겠느냐”(고전2:6-16)고 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세상적 관점으로만 보기 때문에 악인이 형통하고 선인이 고난 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의 형통이 진정 형통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복이고 형통이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고 당신을 증명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14:13)고 했으며,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5:8)고 하였다.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19-24)는 말씀도 보자.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자신에게 좋으리라는 말이 그저 푸념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언제인가? 앞서의 말씀에 답이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라면 육체가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좋다. 살아 있는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영생 낙원의 나라에 살게 되지만, 하나님이 할 일을 남겨 주셨다면 아골 골짝이든 그 어디든 고난과 환난이 몰아치더라도 기쁨과 감사, 기도로 견디며 부르실 그 날까지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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