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모라는 섬에 있었던 요한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9-10)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천국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세력에게 붙잡혀 밧모 섬에 갇혔다. 지금도 종교로 핍박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이지만, 사도 요한의 시대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천국 복음을 전하려면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고 하였다.
우리들 인간에게 종교는 어떤 의미인가? 영(하늘 세계)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누려 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큰 뜻이 아니었던가. 세상에 사는 동안 영혼은 아랑곳하지 않고 육체만을 위해 사는 짐승의 삶을 살기보다 그 육체를 디딤돌 삼아 높고 깊은 사랑의 삶을 살아가라고 이끄는 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믿음은 영의 세계를 지상에서 실현시켜 육체가 있는 동안에도 고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다
사도 요한이 어떻게 계시를 받았는가를 설명한 부분이다. “주의 날에 성령이 감동하여”라고 했는데, 여기서 성령이란 영적 상태의 실체를 말한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언어로 설명할 때에는 “내(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성령이요”(요6:63)라고도 하고 “성령은 진리니라”(요일5:7)고도 한다. 성령이란 영적 실체가 자신의 육체 안팎으로 하나님의 뜻과 심정으로 샘솟게 된 구체적 정황으로서 존재한다.
“감동”이란 또 무슨 뜻인가? 감동을 이르는 헬라어는 ‘γινομαι(기노마이)’이다. 이 단어는‘…되기 시작하다’는 의미로서 성령, 하나님 말씀, 뜻의 심정이 사도 요한에게 덧씌워진 것을 말한다. 바울의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면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心碑)에 한 것이라”(고후3:3)가 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뜻이 자기 육체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 육체적 존재의 의미는 말씀이 기록되는, 살아 움직이는 비석이 되고 그 성령의 도구가 된 상태를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스며들게 하여 몸 자체가 말씀을 기억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감동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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