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인을 뗀다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계6:3-4)
첫째 인을 뗄 때는 흰 말과 그 말을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제 둘째 인을 뗄 때 붉은 말이 나오고 붉은 말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큰 칼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
성경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위해 원수를 갚고 복수를 하라고 해놓은 곳이 없다. 오히려 이를 말리고, 심지어 그 원수를 사랑으로 품으라고 했다. 원수를 갚는 일 따위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당신의 뜻에 따라 살라고 했다. 성경의 어떤 구절들이 마치 원수 갚는 것을 허락하는 내용인 듯 착각을 부를 만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게 하고 큰 칼을 받았다”했는데, 성경 전체를 알고 이 구절을 보면 이해가기가 쉽다. 예수님이 “내가 세상(있는 그대로의 물질적 세상이 아니라 육체 본능의 탐심의 지배를 받는 세상, 그 사회적 구조와 의식, 죽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만 생각하는 육체 중심의 삶과 그 세상을 말함)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인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34-36)와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여자둘이여(육체만을 생각하는 겉사람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 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4:1-4)
혹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식하고 하나님 심정의 사랑만 가지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룸5:10)를 살펴보자.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육체 중심의 삶을 살면서 세상 영혼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존재를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이 영혼을 방치하면서 육체만을 위해서 사는 세상(사람)에 화평을 주러 오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 욕심을 단칼에 자를 수 있는 말씀(성령)의 검을 주어 육체가 아닌 영혼중심의 삶을 살면서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감사와 기도, 기쁨으로 살라는 것이다. 아무리 채워도 족함이 없는 욕심을 단칼에 베어내고 하나님과 화목된 삶, 즉 스스로 의미가 충만한 영혼 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세상에 화평 대신 칼”을 주신 것이다.
흰 말이 영적 승리를 상징하고 붉은 말과 칼 역시 영적 승리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참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상 욕심을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는 자들에게 거기 안주하는 거짓 화평을 제거하고 그 욕심을 베어내 죽게 함으로 살게 한다는 것이 오늘의 이 말씀이다.
“(성령이 안에서 역사하지 못하는 자, 하나님 사랑의 말씀이 없는 자는)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영혼 없는 욕체의 욕심만을 채우며 살게 하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마10:21)"는 말씀을 기억하자.
아무도 죽지 않으며 모두가 화목하게 한다는 의미로 ”화평을 제하고 칼을 받았다“ 고 한것이다. 하나님의 칼은 정녕 우리를 살리는 은혜로운 것이다. 당신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칼집이 될 준비가 돼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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