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 그의 제자와 예수 그리스도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요1:29-42)
예수님은 스스로 말씀하듯이 하늘로서 온 산 떡이며 참된 음료였다. 그것을 세례 요한도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으나 그는 산 떡과 참된 음료라는 소개를 적은 차림표를 들고 있기만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이 음식을 먹으면 내가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며 맛있고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우가 단지 세례 요한 뿐이겠는가?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고 영생 얻기를 구한다는 바리새인을 향해 예수님은 말씀하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5:39-40) 라고 하였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성경속의 인물들만이 예수라는 차림표를 들고 예수를 주문하지도 맛보지도 먹어보지도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지도에 그려진 목적지를 발견하고 목적지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는않은가? 그림 떡을 보고 먹은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지도이며, 그림 떡이자 이정표인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도책, 그림책, 안내책자를 너무도 소중히 여기다가 오히려 성경이 우상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목적지를 찾아 가는데 이정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정표는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 방법들이 곧 얻어야 할 최종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과 바리새인은 그것을 잊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도 착각하고 살았다. 다만 세례 요한이 소개하는 차림표의 내용을 자세히 듣고 있던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는 음식을 주문하여 맛보고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예수를 자기 기준에 맞춰 맛만 보고 실상으로는 먹어보지도 않고 떠나는 많은 무리들을 보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너희도 가려느냐” (요6:67).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주에게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6:68)라고 대답하였다. 진정한 산 떡, 참 음료, 영생 떡을 맛보고 먹기 시작한 사람은 떡을 버리고 떠날 수 없다. 사람이 살면서 세상 떡이 없이 살 수 없듯이 우리의 영혼은 영생 떡이 없이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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