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전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손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에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2:12-22)
예수가 가나의 혼인잔치를 통해 혼인 잔치는 형식 위주의 잔치가 아니라 기쁨과 흥겨움의 잔치여야 한다고 드러내신 후에 유월절이 다가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 안에서 소와 양,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어 주면서 사는 자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다.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생겨진 풍습으로 장사꾼과 제사장이나 성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악어와 악어새처럼 제물을 팔게 하는 대신에 상납을 받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말씀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 즉 육체 성전이 되어 지게 하는 도구로써 사용되는 것이지 육체를 배불리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 하신다.
책을 지은 저자와 출판사 혹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과 음반회사와 같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면서도 자신 또한 경제적 혜택을 가질 때 도적적 타락도 아니고 마땅한 것이다. 다만 건물 된 성전만은 경제적 유익을 위하지 않고 오직 육체적 성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성전을 헐라
어떠한 성전을 헐라는 것인가? 성경에서 눈에 보이는 명백한 답은 예수의 육체를 무너뜨리면 예수가 다시 일어난다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은 그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건물 성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육체 성전으로 거듭나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곧 성전에 대한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낡은 사고와 그릇된 고정 관념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9:16-17)와 같다.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라는 생베 조각으로 새 옷을 지어 입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는 율법이라는 낡은 종교적 사고를 벗어 버리고 새로운 부대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전에 대한 낡은 사고를 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흘 동안에 새로운 성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외적 성전에 대한 바라봄의 관점을 세속적 욕망의 채움이 아닌 영적 충만함으로 바꾸는 자들에게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 지게 해서” (눅13:32) 자기 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가 살아서 각자의 육체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우뚝 서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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