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요2:23-25)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기적과 같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일어날 수 있는 기적을 믿지 않는 것은 교만이겠으나 세속적 의미의 기적만을 바라고 추구하는 것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마16:4 참조). 신앙생활의 근본 목적은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삶의 여유가 생겨나지만 시작이 세속적 이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 세속적인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24-33)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추구는 먹는 것과 입을 것이 아니라 목숨의 추구인데 이 목숨은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존속되어지는 육체의 목숨이 아니라 영혼의 목숨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영혼의 목숨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하면서도 그 믿음이 예수님이 추구하시는 것, 곧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영혼이 살아 숨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를 통해서 일어나는 세속적 표적만을 보기 위한 것임을 알고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 했다고 하신다. 그들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도모하실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적 표적을 보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의 목적이 진정한 영혼의 삶이 아니라 영혼과 무관한 육체의 안락과 편함과 욕망의 충족만을 위한 것임을 아신다. 그래서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 자신을 따를 때 따르는 그 목적이 영혼과 무관한 것일 경우에는 “썪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요6:27)고 말씀 하신다.
또한 신앙 추구의 목적과 관계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참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데 노력하셨다. 다만 세상에 목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더 이상 세속적인 것을 얻을 수 없다고 깨닫는 순간 예수를 떠날 것을 아신다. 마치 예수 주변에 머물다가 노아의 방주에서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는 때가 되면 떠나는 까마귀처럼 그들도 떠날 것을 아신 것이다. 진정한 신앙인은 성경의 까마귀 같은 존재가 되지 말고 노아의 방주에 끝까지 머문 비둘기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요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일 (요3)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3.31 |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3.31 |
성 전 (요2)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3.31 |
가나의 혼인잔치 (요2)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3.31 |
빌립과 나다나엘 (요1) - 박승현 목사님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