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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 (마10)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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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
 

성경의 선생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선생의 개념과 차이가 있듯이 성경의 종과 상전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상전이란 하나님이며,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과 동등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존재를 가리킨다.

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성경의 상전은 섬김을 받으려는 존재가 아니라 섬기려는 존재다. 종은 어떤 일을 할 때 삯을 바라고 일하며 지시받은 것 이상으로 하지 않으려는 노예의 근성을 가진다. 성경의 상전은 종을 부려먹는 상전이 아니다. 상전의 심정을 가졌지만 종의 위치에서 일하는 상전이다. 종처럼 시켜야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자발적으로 일한다. 기쁨과 섬김으로 일하며, 삯이 목적이 아니라 일이 목적이기에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또 목적하지 않았는데도 삯이 주어지므로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더욱 더 감사하게 여긴다. 상전이 시켜서 일하는 종이 아니라 상전이면서 종이기에 일하면서 누리는 기쁨을 본인이 만끽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상전된 종은 일해야 할 것이 눈에 더 잘 보인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능력'이라 한다. 그러나 종으로만 남은 종은 삯이 목적일 뿐이어서 일은 하지만 얻는 기쁨이나 감사도 삯이 있고 없고 혹은 적거나 많거나 하는 것에 휘둘린다.

상전된 종
하나님의 사람들도 일을 시작할 때는 응분의 대가를 바란다. 혹은 하나님의 종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어느덧 하나님의 심정을 갖게 된 순간, 즉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어떤 일에 대해서도 대가를 바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일이 곧 대가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삯을 안 받는 것은 아니지만 삯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은혜로 여긴다. 삯을 얻는 기쁨보다 일을 통해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종이 상전되면 족하다. 주인의 심정으로 자기 달란트의 몫만큼만 일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종으로 사는 자는 손님이요 나그네지만, 상전으로서 일하는 자는 주인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한다.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2장에서 비유하기를, 천국은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였다. 임금이 상전이다. 상전이 되지 못한 자는 천국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확실히 알지는 못하는 자이다. 상전이 되어진 자만 누리는 것이 천국이다. 종이 된 자는 천국을 바랄 뿐 누리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바라는 자는 누리지 못하고 바라지 않고 일하며 베푸는 자만이 누린다. 이것을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천국을 누리지는 못한다. 살아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진리의 세계요 천국의 세계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종이 상전되어지면 족하다"고 한다. 어떤 일의 주체가 되는 순간 방관하지 않으며 사소한 일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작은 것에서도 차고 넘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상전으로 살자. 모든 일에 있어서 손님이 되고 종으로 살아가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주인의 의식을 가지고 살게 될 때, 그 동안 맛보지 못했던 기쁨과 감사를 만끽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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