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11:2-6)
"요한은……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눅3:18-20)
요한의 혼돈
요한 스스로 예수께서는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주지만 자신은 물세례만을 준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요한은 옥에 갇히고 난 뒤 예수께서 자신을 위해 아무런 구명운동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그리스도관과 예수의 하시는 일이 다르다고 여겼다. 그래서 요한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 또 다른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예수께 묻는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요한의 입장에 서서 예수를 바라본다면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의심스럽게 여길 수 있다.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한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는 배은망덕하고 의리(義理) 없는 자였다. 그러나 진정한 의리는 개인 간의 돈독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의리란 '사람이 사회나 세상 속에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가리킨다. 의리를 개인적 관계로 제한하면 '인간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에서 멀어진다. 개인적으로는 상대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줄지라도 사회와 세상 속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의리, 즉 공의이다. 예수는 세례요한이 자신에 보이는 호의를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과의 개인적 관계에 치중한다면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삶이란 '공의'의 삶이다.
예수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이 가장 크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안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라고 하셨다. 이 말의 여러 의미 중 한 가지는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정신)가 임한 사람은 세례요한처럼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개인과의 관계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어떤 사람에게 표를 주어 그가 선출되었다고 하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대통령이 자기에게 한 표 던진 나만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의리 없는 자라 비난한다면, 이때 누가 정신없는 자이겠는가? 이런 편협한 생각 때문에 요한은 스스로 예수에게 상처를 입고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냐 아니냐 하고 물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
예수는 요한에게 내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말하는 대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눅4:18(원문에만 있음. 세상에서 무법한 자의 음란 때문에 마음이 상한 롯) 참조] 혹은"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11:5-6)고 하셨다.
예수 자신이 세례요한에게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말한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요한 자신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분의 답변이 중요치는 않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자에게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것은 소경에게 빛을 설명하고 색을 구분시키려고 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지 여부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의 상태에 이른 자의 역할에 대해서 "소경이 보며……"(5절)의 말씀을 하시면서 내(예수)가 개인적으로 너를 위하지 않는 행동 때문에 네(요한)가 실족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하나님의 의는 공의(公義)이지 사의(私義)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육체를 입고 대행하는 공생애자는 개인을 위해 일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일하며, 다만 결과가 하나님 뜻을 알아가는 개인들에게 유익을 줄 뿐이다. 그것을 모를 때는 예수나 예수와 같은 존재를 통해서도 실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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