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이야기

심판과 현재 상태 (마11) - 정광교회 박승현

728x90

심판과 현재 상태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11:20-24)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과 벳새다야
고라신과 벳새다는 갈릴리 바다 북동쪽 해안에 위치한 어촌으로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다른 지역보다 많은 권능을 행했던 지역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성령과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않았으므로 예수께서 고라신과 벳새다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반대 관점에서 살펴보면 '은혜가 넘치는데도 죄 속에 거한다면 그들에게 임한 진노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고라신과 벳새다에게 행한 권능을 두로와 시돈(복음이 잘 전파되지 않았고, 예수께서 잘 다니지 않았던 이방지역인 팔레스타인 북쪽의 지중해 연안)에서 행했다면 그들이 깊이 회개했을 것이며, 지난날 잘못을 슬픔으로 뉘우치며 베옷(상복)을 입고 자기 허물을 상징하는 재(티끌)를 뒤집어쓰면서 통곡했으리라 하신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쉽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두로와 시돈이 심판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아니다. 고라신과 벳새다보다는 견디기 쉽다는 것이다.

심 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5-37). 결국 심판이란 육체 속에 담겨진 말씀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서 선한 자는 의의 심판, 악한 자는 정죄의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신다"(행17:30)고 이른 것처럼, 하나님은 모르는 것을 허물치 않으신다. 그러나 상대가 허물치 않는다고 해서 자기 허물이 없어지거나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제대로 못 하고 어려운 삶을 살게 되었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동정하고 이해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못 배우고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것이 자랑은 아니요, 그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때 절대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이 어떻게 바라보든 자신의 현재 상태를 스스로 돌아볼 때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주님 안에서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로와 시돈이 심판을 견디기 쉽다는 것이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스승이 없어서 좋은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을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이 동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그들 삶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