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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마11)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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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지 아니하려 하는데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느니라"(마23:1-4) 하시면서 어떤 것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인지 설명하셨다. 즉 종교 지도자가 모세라는 하나님의 대행자의 위치에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율법의 의무를 뭇 백성에게 부과한다는 것이다.

백성들은 그 짐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간에 의무로 부여된 짐은 항상 무겁다. 짐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 의무가 무겁기 때문이다. 의무는 종과 연관성을 갖는다. 종은 짐 자체가 가볍고 무거운 것을 떠나 항상 무겁게 여긴다. 그러나 주인은 의무 때문에 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주인에게 일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이며 기쁨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천국을 미끼로 백성에게 의무를 지우며, 백성은 천국을 목적으로 일한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현재의 기쁨이 없다. 훗날의 기쁨을 보장받기 위해 현재에는 두려움과 무거움만 감당하는 것이다.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천국이 아닌 지옥행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짐을 벗어던질 용기도 없다.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이 실제 존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보지 못한 세계이든 거짓의 세계이든 많은 사람이 믿으면 사실이 된다. 또 진정 사실이더라도 다수가 믿지 않으면 불신하는 데 두려움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참된 자녀들은 천국에 가려고 의무의 짐을 지지는 않는다. 외형적으로는 의무의 짐을 지는 사람보다 더 많은 짐을 질지라도 그것을 짐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짐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고, 짐을 지는 일은 아들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국에 가려면 꼭 짊어져야 할 짐 혹은 지옥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데 필요한 무기력한 의무의 짐이 아니기 아니다. 천국 되어졌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그분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된 것이지 의무가 전혀 아닌 것이다.

쉬게 하리라
몸이 쉬는 게 아니다. 세상일에 대한 염려, 미래의 천국에 대한 욕망. 미래의 지옥에 대한 공포로부터 놓여나 마음이 쉬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일은 육신이 마치는 날까지 쉬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에 쉬시는 것이다. 이루고자 하는 세상적 목적이 없기에 쉰다. 지옥의 두려움에 대한 공포로부터 쉰다. 겉으로는 일하지만 안으로는 쉰다.

일을 하지만 일을 통해 성취해야 할 목적이 없다. 지금 현재가 목적이고 목적지이다. 자신을 위해 이루어야 할 욕망이 없으면서도 계속 일한다. 살아야 할 목적도 욕망도 없지만 계속해서 숨 쉬며 산다. 삶이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세상 속에서 존재하지만 세상이 자기 안에는 없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배우고 나처럼 되어라 그러면 나처럼 쉬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멍에와 짐
바리새인들의 율법은 강요된 타율이기에 가벼워도 짐이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은 자율이기에 무거워도 무겁지 않고 가뿐하다. 오히려 무거울수록 기쁨이 늘어난다. 종이 아닌 주인으로 살기 때문이다 주인으로 사는 것을 배우면 삶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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