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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귀신이란 (마12)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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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12:43-45)

 

귀신과 성령은 존재이면서 또한 의식이다. 귀신은 어둡고 더러우며 어떤 육체적 존재에 기생하여 산다. 육체의 존재를 자기의 숙주로 삼고 그 육체를 존중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은밀하고 무례하게 거주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육체의 존재가 스스로 제 욕심에 눈이 어두워 귀신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는 귀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육체의 존재가 영적 법칙의 절차를 따라 귀신을 맞아들인 것이다. 영의 세계, 실존하고 영존하는 그 세계의 법칙에서는 상대의 동의 없이 무례히 행함이 없다. 다만 법을 이용하느냐 존중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귀신은 법을 이용하고, 성령은 법을 존중한다. 성령은 귀신과는 반대로 철저하게 자신이 거할 육적 존재에게 동의를 구하며, 육적 존재가 자신을 인식한 후에야 비로소 영접을 받게 된다.

귀신과 물
 귀신이 나가는 데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길 성령(하나님의 심정의 말씀과 올바른 삶의 지침을 담은 영적 존재)에 의해 귀신이 나가게 되면 더러운 귀신의 자리를 성령이 차지한다. 그래서 다른 더러운 영적 존재가 들어올 공간이 사라진다, 즉 귀신이 다시 들어올 수 없다. 그러나 성령 아닌 다른 방법, 즉 퇴마(여러 방법이 있다. 윽박지르기, 달래기, 귀신의 습성을 파악한 뒤 귀신이 싫어하는 행위를 통한 퇴치 등)를 통해서 귀신이 나가면, 숙주 자신의 이성이 귀신을 인식하고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숙주였던 사람이 귀신이 나간 것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귀신은 다른 모양의 형식(종교, 세상 사회의 여러 기관 등)을 빌려 다시 침입한다. 이것을 한 귀신이 나가고 일곱 귀신이 들어온다고 하는 것이다.

귀신은 물을 싫어한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올바른 지식이다. 더러운 것은 물로 청소되며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면 어둠이 물러난다. 물을 소유한 주인과 지독한 싸움을 벌이거나 쫓겨나야 하기 때문에 귀신은 물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기 이성의 인식을 바탕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원래 귀신이 더 강력한 귀신을 끌고 들어와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 귀신은 겉으로는 의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무관한 자신만의 욕심을 위한 삶을 살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러한 자를 사람들은 대단히 종교적인 사람으로 칭찬한다.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나를 속이고 나를 죽였다"(롬7:10-11)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하늘싸움이란 물싸움이다.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의 싸움, 어두운 물과 밝은 물의 싸움을 가리켜 하늘싸움이라 한다. 물은 물인데 나를 깨끗하고 맑게 하지 못하는 물은 아무리 타인의 인정을 받을지라도 일곱 귀신의 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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