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12:38-40)
표적만을 목적으로 추구하는가 표적의 소망을 갖는가
신앙에서는 표적, 즉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표적이 신앙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표적은 또 다른 표적을 원하게 할 뿐 일어난 표적 자체로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표적을 바라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다. 힘든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기도이다.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가 난치병에 걸려 의학적인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들은 그를 위해 병의 치료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상대를 향한 좋은 의도의 표적, 소망마저 갖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서 너무 무자비하고 표독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소망의 표적 기도는 꼭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이성과 지식의 측면에서 불가능해 보인다고 처음부터 소망의 불씨조차 버리는 것은 너무 무자비하고 소중한 감정을 전혀 고려치 않은 무례한 처사일 수 있다.
내적 표적 ― 요나의 표적
신앙에서 표적을 바라는 마음이 있기는 하겠지만 표적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표적에 대한 소망은 사막의 여행길에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표적이 목적이 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표적을 목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자들아"라고 하시며 경고하신다. 외적 표적은 고단한 삶의 여행길에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외적 표적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감사보다 욕심을 부르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그래서 예수님은 "떡을 먹고 배부른 표적은…… 썩는 양식의 표적"(요6:26-27)이라 하셨다.
외적 표적, 양식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배가 고파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표적은 외적 표적이 아니라 내적 표적이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영생하는 양식"(요6:27), 마태복음에서는 "요나의 표적"이라 하셨다. 성경에서 영생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이오니오스」이다. 이 말은 영구히, 계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어울리는 삶, 자기 자신도 신(神)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게 사는 삶을 가리킨다.
요나의 표적을 보자. 요나가 살던 시대에 '물고기에게 먹혔다'라는 말의 의미는 '어려운 상황에 깊이 빠졌다'는 뜻이다. '내 코가 석자'라는 우리 속담을 보자. 실제 코가 석자나 빠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을 돕기는커녕 내가 죽을 지경이라는 말의 비유이다. 이처럼 성경 곳곳에도 그 시대 상황이나 언어 및 사고, 문화를 알아야만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이 나온다. 본문에 '밤낮 사흘을 땅 속에'라는 표현이 있다. 그 말의 헬라어 사본을 보면 '땅의 마음속에'라는 말이다. 그 땅의 마음속(혈과 육, 세상적 욕망의 삶)에서 빠져나와 세상적인 것 자체가 다만 무거운 짐인 것을 깨닫고 작은 것에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게 되는 것이 요나의 표적이다.
요나의 표적이 일어난 사람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에 관심을 쏟는다. 세상적인 물질과 명예와 권세보다는 자기 영혼의 무게와 맑음에 관심을 쏟는다. 즉 속사람이 더욱 새로워지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 진정한 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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