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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16)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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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마16:1-4)

 

기적을 요구하는 신앙
욕심이란, 있는 그대로의 것에 자족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것을 끊임없이 원하는 마음의 무저갱 상태를 말한다. 잘못된 신앙은 죄의 근원인 욕심을 부추기는 일을 한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부조리한 기성 종교, 즉 유대교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기 위해 일하시는데, 유대교의 양대 지파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그분을 시험할 목적으로 기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다.

예수의 답
어리석은 자들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님은 "자연현상을 통해서 일어나는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호통을 치신다. 예수의 답변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이 사건의 진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시험하기 위해 묻고 요구하는 자들은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내려달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늘의 표적, 즉 시대의 표적은 일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으며, 지금도 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우리 속담에 업은 애기 삼 년 찾는다는 말이 있다. 이미 하늘의 기적이 있었고, 우리는 그 기적 속에서 살고 있다. 끊임없이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짓이다. 바다에 살지만 바다를 모르고 물을 모르는 물고기와 같다.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이미 와 있는 표적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시대, 영원)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요나의 표적
요나는 B. C. 760년경 활동했던 인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여 니느웨(당시 앗수르의 수도, 지금은 터키에 근접한 이라크 지역)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니느웨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심정이 있어야 한다"고 이를 전하라 하신 것이다.

짐승은 떡만 있으면 되지만 사람은 떡만 가지고는 행복, 감사, 기쁨을 알 수 없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말도 있다. 사람이 사는 데 떡도 필요하다. 그러나 떡은 감사와 기쁨, 행복의 근본조건이 아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세상의 떡은 짐승의 양식일 뿐이다. 욕심에 의한 사망의 고통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다.

요나는 그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요나 자신의 기준에 따른 열심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자기 기준의 하나님관과 하나님의 본래 뜻이 충돌하여 자기 생각이 무너지는 곤혹스러운 상태를 당시의 페르시아 문화에서는 '물고기한테 먹혔다'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분이 임의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하여 당하는 것이다. 마치 자연을 거스르기 때문에 재해를 입듯이 말이다.

니느웨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도 세상 중심으로만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요나처럼 옹졸하고 자기중심적인 하나님관을 가진 사람은 세상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긍휼의 마음보다는 복수의 심정을 가진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기만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이 자신 또한 심판의 대상이 되게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심판은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의 삶이 곧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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