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1-4)
천국에서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은 성령의 말씀으로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고치셨고, 하나님 아들로서 사역을 수행하다가 세상 신에 미혹을 당해 살고 있는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그 세상 신은 사람들을 욕심의 종노릇을 하게 만들며 종교를 통해 현재의 삶에 자족케 하기보다 세상것을 구하게 하는 존재를 말한다.
예수님은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죽이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용서를 통해서 자신을 죽이는 무리와 그곳에 있는 사람 중 몇몇에게라도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여전히 하늘나라의 상급과 천국의 서열에만 관심이 있었다. 천국의 서열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관점의 서열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을 세상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이런 오해가 똑같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께서 답하시길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아람어 Hazar : '다시'의 번역으로 '개심하다'가 아닌 '새로 태어나다'의 의미)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다" 하면서 천국의 실상을 실감나게 설명해 주신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영생을 얻으려고 성경을 상고하지만 정작 그분께는 나아가지 않는다. 성경 말씀을 배움에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배움의 시작은 스승이 아니라 스승이 제시하는 가르침에 의지하여야 하고, 말이 아니라 그 의미가 중요하며, 일시적인 뜻이 아니라 참된 의미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판단하는 일상적인 마음이 아니라 지혜의 마음에 의지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자가 스승 같아지면 그때는 스승을 의지하는 것 이상으로 더 섬기게 된다.
예수는 어린 아이다
예수는 꾸미지 않는다. 예의를 갖추되 단호하다. 어린 아이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어제에 매이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누군가(하나님, 부모)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안심하며 놀이(삶)를 즐긴다. 예수의 삶은 놀이이다. 우리 또한 신앙에 의해 우리 삶을 놀이터가 되게 해야 한다. 세상 말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알고 좋아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즐기는 삶을 살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즐긴다는 것은,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사랑을 즐기는 것이다. 또 하나님은 진리이기에 진리를 즐긴다는 것이요, 곧 우리의 모든 삶을 즐기는 것이다. 믿음에 의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밖에 없는 천국의 어린 아이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끊임없이 구하고 행하면, 걱정 대신 기도와 기쁨이 넘치고 욕심이 아니라 자족과 감사가 넘치게 된다.
'마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리새인들에게 시험 받는 예수 (마19)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07.15 |
---|---|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마18)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07.15 |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마17)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07.14 |
저가 간질로 고생하여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마17)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07.14 |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마17)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