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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마19)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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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습니까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16-22)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룰 팔아……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생은 재물, 돈 같은 것이다. 돈을 쓰거나 수고를 행하여 지금까지 내게 없던 영생이라는 물건을 얻어서 그때부터 영생을 누리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영생은 자판기의 커피처럼 아무 때 아무 곳에서나 얻을 수 없는 것인데도 그릇된 신앙의 교사들이 잘못된 개념으로 영생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부자 바리새인 청년은 '무엇을 해야만 영생을 얻느냐'가 아니라 '영생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어야 마땅하다.

이런 일은 지금도 종교인들 사이에 너무나 흔한 경우이다. 구원이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천국과 성령은 무엇인가 하는 것처럼 종교 용어의 본질적 의미부터 배우고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한다. 그런데도 종교 용어를 종교적 개념으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속적 개념에 제 마음대로 잇대어 신앙에 열심을 낸다.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의 질문에 선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존재가 계신다고 답한다. 선한 존재는 행함과 관계없이 선하다. 선한 존재가 행위를 하면 그것이 선한 일이고,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선하다. 빛은 빛으로 존재하는 순간부터 어둠을 밝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엔토레)을 지키라" 하신다. 그러나 계명을 의무적으로 지킨다면 은혜가 아니고 삯이며 대가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부자 청년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율법으로 물어 오기에 율법으로 답하신 것이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키면서도 계속해서 율법 의 계명 외에 무엇을 더 해야만 영생을 얻을 것이냐고 질문한다. 영생이란 어떤 외적 행위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영생의 말씀인 하나님 말씀의 씨를 마음 밭에 뿌리고, 마음을 기경하여 마음의 열매가 육신의 행위로 나올 때 영생자가 되는 것이다. 부자 청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신앙인들이 영생을 사후 혹은 먼 미래에 얻어질 것으로만 생각한다.

계속되는 부자 청년의 질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영생을 누리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다. 너무 지키기 어려운 일을 이르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영생은 신의 성품에 따라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쁨을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들의 기준이나 평가와 무관하게 본인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남들 보기에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고, 큰일인 것처럼 보여도 거기서 얻는 기쁨이 아주 작을 수 있다.

즉 내적인 느낌(누림)은 상대적인 게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자 청년인 네가 율법을 지키고도 영생을 모른다면(느끼지 못한다면) 네 있는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고서라도 하늘에서 보화(영생)가 주어지고 나서야 나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의 성품에 따르는 삶이 영생이라 했다. 신은 베풀고 긍휼히 여기고 나누며, 자신까지 내주는 것으로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세상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루하루 신께 다가가고 만나는 사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신비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는 네 돈이 곧 하나님이기에 돈을 통해 누리고 돈에게 의지하는 동안에는 영생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하신다. 네가 의지하는 것을 버리기 전에는 진정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다고 하신다. 버릴 때라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불안 대신에 설렘을 얻게 된다. 그러한 삶의 신비가 영생이라고 하신다. 매일매일 신에게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삶, 내가 가진 조그만 것을 기쁨 가운데 나눌 수 있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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