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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마20)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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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마20:29-34)

 

여리고의 두 소경
성경에서 소경은 육체적으로 눈이 먼 소경만 뜻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에 관계된 것을 말한 것이지 육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육체적 질병과 장애가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영적 현상에 의해 육적 현상까지 치유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성경 자체가 원하는 뜻이 있다. 그것은 성경 모든 내용이 구원, 즉 영적 현상에 관계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가 소경이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리라"(이사야6:9-10)고 했다. 마음이 완악한 자,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마음이 청결해지지 못한 채 세상의 탐욕에 물든 자가 소경이요, 귀머거리요, 벙어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모른 채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맬 뿐 삶의 고해에 지쳐 허덕이는 자들은 다 소경이요 벙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리고의 소경은 자신들의 처지를 정확하게 깨달아 불쌍한 자라는 것을 아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 암흑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갈망하고 있다. 그것에서 벗어날 길을 알 수 없기에 그 방법을 알려주십사 하는 것이고 또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눈을 뜨게 해달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기를 "라오디게야 교인들아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5-18) 했다.

육체를 입은 삶의 근원에 대해 모른 채 살아간다는 것만큼 불쌍한 것은 없다. 여리고의 두 소경은 "나는 미지근하고 나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영적 빈곤함 속에 있고 눈먼 소경이요 벌거벗은 상태에 있으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시여 당신에게 있는 불로 연단한 금을 나에게 주어서 부요케 하고 흰 옷을 주어서 나로 입게 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주어 눈에 발라 눈뜨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다. 예수 같은 분을 찾아가 당신이 간직한 하나님의 보화와 보물을 나누어 주소서 하고 간구할 때, 간구한 자는 그 눈을 뜨게 되고 귀가 열리게 되며 말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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