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1-14)
천국은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당시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다.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당신이 드러내려는 하나님 나라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그러신 것이다. 이 천국 잔치 비유는 처음에 초대받은 손님, 즉 표면적 유대인과 기성 종교인들이 초대를 거부했다는 것과 그들 대신 누구든 먼저 눈에 띄는 자들이 초대되었다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비판하고 적의를 품는 자들을 향해 비유로써 '너희는 천국 복음 잔치의 초대를 원치 않고 무시한 손님들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부르고 이방인에게 구원의 자리를 넘기신다. 너희가 놓친 구원을 그들이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잔치를 베푼 임금의 마음자세가 천국을 상징한다. 임금의 마음을 갖게 되면 천국 된 삶을 살게 된다. 이 비유는 2000년 전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하던 때이므로 마을의 잔치는 배를 불리고 기분 좋게 포도주를 한 잔할 수 있는 즐거운 행사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잔칫집이다. 그러니 잔치를 베푼 사람, 잔칫집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임금은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초대했다. 그들이 짐을 내려놓고 쉬면서 음식을 즐기고 술을 마시며 그 은총에 감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정작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삶이 힘겹다고 하면서도 그 짐을 내려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짐을 지키고 나르기 위해 천국 잔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세상의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장으로 흩어졌다. 심지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을 능욕하고 무시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백 년도 살지 못할 인간들이 천 년을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경우이며 잔치를 통해 배우고 누려야 할 것은 무시하고 삶의 종으로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또 이 비유에서 주목할 것은, 거리에서 불러들인 자들이 예복을 갖춰 입은 장소이다. 구약을 보면 초대된 자들에게 잔치에 걸맞은 예복이 선사되는 것을 알 수 있다.(왕하10:22 참조)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는 세상 어느 누구라도 초청되었고 그 자리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그 잔치 자리에 걸맞은 예복을 입지 않은 자가 있었다. 청함은 배우는 것이며, 택함은 배운 자가 배운 대로 살게 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즉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이라는 옷을 입고서 용서와 사랑이라는 띠를 매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 즉 예복을 입는 것이다. 가르치려고 청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처럼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지식을 배우되 이를 세상의 지식처럼 여길 뿐 제 삶에서 그대로 살지 않는다는 의미다.
물론 배운 대로 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 은혜의 말씀이 역사하셔서 그것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와 쉼 없는 육신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택함을 입을 수 있는 자는 영(마음)이 준비된 만큼 육신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육신이 영의 요구에 자연스럽게 호응할 수 있을 정도로 날마다 훈련해야 한다. 그러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살도록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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