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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바리새인들이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 상론하고 (마22)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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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 상론하고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 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마22:15-22)

 

시험을 하려다 시험에 든 바리새인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못마땅했다. 예수가 자신들의 신앙관, 신앙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백성의 마음까지 빼앗는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보기에 예수의 행동이 백성을 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크게 도움이 될 삼백 데나리온(당시의 일 년치 수입쯤 된다)어치의 향유를 제자들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장례식을 미리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낭비했다. 그 시대의 죄인이라 할 수 있는 세리, 창기들과 어울리고 술을 즐기는 모습 또한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는 백성을 위한 삶을 살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헐뜯고 올바른 하나님을 위하는 체하는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예수의 말씀을 통해 기성 종교에서 맛보지 못한 해방감을 얻었고, 급기야 예수를 따르는 무리까지 생겼다.

이제 바리새인들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다. 예수 자신과 별반 다른 모습이 아닌 자기들을 맹렬히 비난하는 것을 내버려둘 것인가? 예수가 믿는 하나님은 바리새인이 받드는 하나님과 다르다니! 심지어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의 기성 종교인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종교를 빌미로 백성들의 의식을 조악하고 편협하게 만들면서 내세의 구원을 미끼로 현세의 삶을 공포로 몰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악 중의 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입을 열어 그 그릇됨을 일러 가르쳐야만 했다.

예수의 구원은 현재 삶의 모습과 관계가 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이 죽일 놈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수준이 문제이지 그들의 내보인 정성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정성이 좋아도 정성을 올바로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다면 효과를 볼 수 없다. 그것을 바울은 "너희가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지식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수는 기성 종교인의 오해를 무릅쓰고 그들을 위해 그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예수의 진정성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더 이상 예수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그분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데 골몰했다. 뜨거운 감자 식의 문제를 들먹이며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로마에 바치는 세금 문제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예수는 그들의 빤한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동전에 새겨진 형상과 글이 가이사의 것이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기이하게 여겼다. 예수가 자신들이 파놓은 함정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이 기발했던 것이다. 예수가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가이사에 대한 반역이라 했을 것이고,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가이사에게 협조하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몰아붙이려던 의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세상것인 돈은 세상 임금인 가이사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밭인 영혼(육체 속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바치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것만을 세상에 바치는 삶을 산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이 된 영혼의 사람들은 세상 속에서 세상것을 가지고 세상을 위해서 살되 그것이 곧 하나님을 위하는 결과를 내놓는다. 또 하나님을 위하는 삶은 다시 세상을 위한 삶이 된다. 이것을 몰랐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얕은꾀로 인해 올무에 빠지는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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