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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천국은 열 처녀와 같다 (마25)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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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열 처녀와 같다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13)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며 살아가야
성경에서는 천국을 특정 장소로 제한하지 않고 존재로 비유해서 말한다. "천국은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는 집주인"(마20:1-) 혹은 "두 아들의 아버지"(마21:28-) 등이 그것이다. 또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 주고 떠난 집주인"(마21:33~)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마22:2-),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린 사람" "겨자씨 한 알" "가루 서 말 속의 누룩" 등으로 표현된다. 그 비유들은 존재와 존재에 의한 상태 구원, 그리고 영적 성숙을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모두 담고 있다.

열 처녀의 천국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미련한 다섯 처녀나 슬기 있는 다섯 처녀나 똑같이 천국 된 존재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여분의 기름을 그릇에 담아 갔느냐 아니면 그런 준비를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리키는 지혜와 미련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 1:19-21) 혹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고전1:27-)라고 바울은 말했다.

그러므로 성경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세상적 측면에서는 오히려 지혜로운 자였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세상적으로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억측이나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마태복음 24장의 악한 종과 충성된 종의 비유에서도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마24:48)와 같이 세상적으로 지혜롭고 하나님의 측면에서는 미련한 자는 세상적 유익을 위한 삶에 정신을 빼앗긴다.

반면 충성된 종은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오기 때문에"(마24:50) 항상 깨어 예비하는 삶을 산다. 열 처녀 비유 끝에도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고 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꼽으시는 슬기로운 자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융통성 없고 어리석으며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그와 반대로 하나님 보시기에 미련한 자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융통성이 있고 지혜로우며 처신을 매우 잘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비하는 과정에서는 미련한 자처럼 졸기도 하고 자기도 했지만, 신랑을 맞아들이기 위한 등불을 지속적으로 밝혀두고 있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5-16)나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6:22-23) 같은 구절을 생각해 보자. 이처럼 등불을 밝히고 있다는 것은 육체의 눈과 마음의 눈, 관조의 눈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경험을 통해 배움으로써 이성적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영적 힘을 직접 느끼는 내면적 통찰의 눈을 얻어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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