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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내 장사(葬事)를 위하여…… (마26)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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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사(葬事)를 위하여……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마26:2-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선포
신(神)적인 신비한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사람은 자신이 나고 죽는 날을 모르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또 그래야만 죽음에 대한 공포에 쫓기며 살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호, 관리하지 못한 채 생을 마치기도 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영원을 살 것처럼 느긋해 하면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의 지혜자는 말하기를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전7:1-4)고 했다.

예수님은 어떻게 죽어야 태어난 삶의 의미를 완성시키는지 알고 계셨기에 기꺼이 자신을 죽음에 내맡기셨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이라면 기회가 왔을 때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는 측면으로 승화시키려고 자신을 기꺼이 내주리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예수나 스테반처럼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시킬 수는 없다. 사도 바울은 예수나 스테반이 맞이한 죽음을 꿈꾸었지만, 하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에게는 좀 더 많은 육체적 삶의 사역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도록 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24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자신의 심경을 표현하였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막달라 마리아
마리아가 거금 삼백 데나리온어치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장례식 준비를 위하여 썼다고 되어 있다. 세상사람들의 눈에 그런 행동은 낭비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은 다르다. 세상 재물은 영원이나 구원을 위해 쓰여야 그 가치가 있다. 낭비 같지만 낭비가 아닌 것이 있고, 검소한 것 같지만 오히려 인색하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 보게 된다.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의 사역의 의미를 부각시켜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돕는 연출이었다. 향유를 뿌리면서 예수님의 삶이 향기로 가득 찼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 하리요"(고후2:15-16)라는 말이 그것이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3)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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