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난해한 구절과 비유의 풀이를 시작하면서…….
헤르만 헤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대해 평하면서 “모든 상징은 백 가지 해석을 갖는다. 그 각각은 모두 옳을 수 있다. 카라마조프도 백 가지 해석을 가지며 내 해석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야기꾼의 소설도 백 가지 해석을 낳는데, 하물며 창조의 시기부터 이어온 갖가지 비유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성경을 어떻게 하나의 시각으로만 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양하고 깊고 넓은 시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때로는 성경의 일부분만 들어 얘기할 때도 있고 또 그 관점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미리 널리 헤아려주십사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여기에 실릴 성경의 구절, 비유의 풀이가 익히 알고 있는 지식과 조금 다르다 해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여 주시길 권면합니다. 이로써 교우들께서 성경을 이해하고 가슴 깊이 새기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앞으로 성경의 난해한 구절,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볼 만한 부분을 들추어 주보의 한 면을 채워 가겠습니다. 혹여 성경을 오독, 오해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으나 그 결과로 그것을 읽고 생각하는 분들의 현실적 삶에서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경을 통해 합리화한다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과 상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 해석의 역사는 오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육신을 입고 사는 삶의 현장에서는 오독했을 때 오히려 희망과 긍지의 발판을 마련한 적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신에게 유익한 쪽으로 해석을 하다 보니 오독, 오해가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런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독과 오해가 없다고 어찌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아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씀의 본질이 심장을 향해 칼질해대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게 힘을 주시는 주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 말씀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는 길로 나아갈 뿐입니다. 저의 오독이 치명적 해악을 가져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원래의 성경의 뜻이 이런 것일 텐데 저 사람은 저기에서 저런 의미도 찾는구나’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함이다”(고전13:9)는 말씀이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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