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하늘과 새 하늘과 새 땅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느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후 12:1-4)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마5:34-35)라고 했다. 또 스테반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었지만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전7:47-49)라고 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늘이다. 그 하늘은 툭 터진 공간, 미지의 세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바울의 표현으로 할 수 있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배워 알아가며 당신의 심정으로 살기를 원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 바로 하나님의 보좌라는 것이다.
“여호와 곧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슥12:1)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람들 속에도 성령을 함께 지으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자기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므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집을 지어 점진적으로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첫째, 둘째 하늘을 거쳐 셋째 하늘에 이르도록 하셨다.
시간에게 사로잡혀 포로가 된, 물질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시간 자체가 의미 없는 영원의 세계인 셋째 하늘, 즉 낙원의 세계가 완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영원의 세계는 믿고 내 안에 간직해서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함께하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잘 모른다. 우리도 그처럼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거기서는 시간에 휘둘릴 일이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늙어감을 생각해보자.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육체적 쇠락을 확실히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 육체와는 다른 마음(자신의 영된 존재)은 늙거나 쇠하지 않는다는 것, 육체와는 별개라는 것을 안다. 혼적인 이성과 영된 마음으로 아는 것이며, 단지 그것을 깊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완성된 셋째 하늘을 창조했으면 당신의 백성들이 슬픔도 고난도 겪지 않고 좋았을 텐데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난을 겪지 않은 영광을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사람이 소망하지 않고 얻은 낙원은 오히려 지옥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물질세상, 육체를 통해 셋째 하늘에 이르도록 하신 뜻이 거기에 있다. 또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가닿게 하실 것을 알기에 기꺼이 받아들일 뿐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사람이 이 참된 하늘을 알게 하시려고 모세로 하여금 십계명과 함께 당신이 거하실, 눈에 보이는 성막인 첫째 하늘을 짓게 하신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내(하나님)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모세)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24:18-25:9)고 이르셨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뉜다. 성소에는 일곱 등대와 향단, 떡상이 있고 지성소에는 법궤와 속죄소가 있다. 속죄소는 그룹(천사)의 날개를 형상화한 법궤 뚜껑을 말한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0-22)고 하신 게 그것이다.
성막(히, 미쉬칸)이란 거처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눈에 보이는 하늘을 세상것으로 형상화시켜 놓으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곳이다.
법궤를 덮는 뚜껑이 속죄소라고 했는데, 그 아래에는 법궤 안에는 두 돌판(율법)이 놓여 있다. 속죄소 위는 피가 뿌려지는 곳인데, 여기서 피는 복음을 상징한다. 율법을 복음의 은혜로 덮지 않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가리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구약에는 궤 안에 두 돌판이 있다고만 했으나 신약에 보면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백성들이 있고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히9:4-5)고 하였다.
심비, 즉 마음 깊은 곳에 새기라는 뜻을 전하신 방편일 뿐인 돌비를 우상화시킨 인간의 무지, 말씀을 통한 삶의 섬김이 권위인 것인데도 아론의 지팡이를 보물로 여기는 어리석음, 썩지 않고 영생을 주는 양식인 하늘의 만나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의 허물 등을 하나님은 덮어 주신 것이다. 또한 둘째 하늘, 말하는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이유도 이러한 첫째 하늘의 뜻을 우리 인간이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건물 성전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아가지 못하실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는 성전, 그리스도 예수를 둘째 하늘로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기라"(요2:19)고 하셨다. 하나님을 아는 데 소용없는 건물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할 가치를 잃은 것이므로 당신께서 나서서 하나님을 알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와 아버니는 하나이니라”(요10:30),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5:26),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6:45-46)고도 하셨다. 당신처럼 말씀을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힘으로 받아들여 그분께서 나를 통해 역사하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져야만 한다는 말씀이고, 이로써 당신이 하나님의 성전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와 사람들에게 둘째 하늘의 역할을 했던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는 셋째 하늘의 존재였다. 예수님은 육체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이제 당신을 통해 배운 교훈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말씀 성령으로 임하시게 된다. 예수님처럼 자기 안에 하나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그 말씀이 세상 탐심에서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한편 누군가에게 둘째 하늘의 역할을 하게 하는 그리스도께서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준 사람이 있다. 바울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 뜻대로 살기 원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사랑을 위한 삶을 금지할 수 없도록 역사하게 된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바울은 그런 자신을 잘 인식하고 있었으며,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을 새 하늘의 존재라고도 한다. 옛하늘의 존재일 때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관념적으로 막연하게 받아들였다면 새로운 하늘의 존재가 된 후에는 사랑의 말씀 기운으로 이끄시는 성령을 놓칠 수 없게 된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해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고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스테반 같은 사람들이 옛하늘 아래 땅 속 존재들이 엿볼 수 있었던 새 하늘, 새 땅의 존재다. 이러한 스테반을 알았던 바울은 사람들에게 감히 말할 수 없었던, 사랑밖에 존재하지 않는 그런 세계가 있음을 기꺼이 말해주었다. 지금 우리는 바울에게 고맙고, 그 세계를 완성해놓고 소망하며 살게 해주시는 주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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