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문둥병자의 태도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것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 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오더라” (막1:40-45)
문둥병자는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막1:34),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짐”(막1:28)을 듣고 예수께서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 병에서 놓여나기만을 바라지 않고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해주든 아니 해주든 예수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하면서 간구한다.
문둥병자의 이런 태도가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그것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은혜로 가는 것이지 권리나 신앙행위의 결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신앙행위조차도 은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알게 되면 자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천국에서라면 그것은 다만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될 뿐이다.
이러한 병자의 마음가짐을 아신 예수님은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신다”(막1:41). 여기서 “민망히 여기사(스플랑크니조마이 ; spλaγχνιξοµaι)”는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낀다는 뜻이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병자의 짐을 잠시 져야 했지만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겪어야 했을 그 문둥병자의 온갖 고난에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성품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 성품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1-8)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은 문둥병자는 주님이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지만 원치 않으시면 지금 이 문둥병을 가진 채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삶이 끝나는 날까지 묵묵히 살아가겠다고 한다. 그의 태도를 보신 예수님은 더 이상 그가 병의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깨끗케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당신에 대한 영광은, 사람이 주어진 조건 그대로 그 안에서도 구원의 삶을 배우고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 하나님이 조건을 다 구비해주셨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변해 갈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벗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힘이 들 때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찾아 기도하게 된다. 삶의 무게는 우리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30)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제 짐을 다 내려놓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짐, 멍에를 메고 지기 때문에 즉, 당신께서 말씀으로 힘을 더해주시기에 마음에 쉼을 얻고 짐은 가볍게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한 뒤에 그 고통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하시면서도 “당신이 원하시면”이라고 말하게 하신다. 그러는 동안 주님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시겠지만 우리를 구원하고자 우리의 고통을 보고도 참으신다는 것이다.
'성경 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보좌 앞에서의 심판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8.03.11 |
---|---|
만지지 말라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8.03.09 |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8.02.21 |
비췸을 얻고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8.01.09 |
젖을 먹는 자 - 정광교회 박승현 (0) | 2017.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