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나사로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16:19-25)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는 대개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기보다 종교적으로 그러하다고 믿는 사람을 가리킨다. 율법이나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죽은 뒤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속은 검을지라도 겉으로는 타인에게 비난받을 짓을 하지 않는, 제법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길…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4-17)에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가 잘 설명되어 있다. 그 외에도 참고하자면 다음과 같다.
곤고한(ταλαιωρος ; 탈라이호로스, 영속적인 시련, 비참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가련한(ελεεινος ; 엘레이노스, 측은한, 불쌍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9)
가난한(πτωχος ; 프토코스, 거지, 영적인 공황상태, 하나님의 은혜를 갈구함) :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한 말, 즉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프토코스) 초등학문(율법, 말씀의 초보, 세상의 가시적 시청각 교재등)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하느냐” (갈4:8-9)
눈 먼(τθφλος ; 튑홀로스, 불투명한, 정신적인 소경)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이런 사람은 자기의 옛 죄가 깨끗하여졌음을 잊어버린 것이다”(벧후1:5-9)
벌거벗은(γυμνος ; 컴노스, 절대적이고 상징적으로 그리스도를 옷 입지 않은)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줄 아나니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서 이 장막집에서 탄식하고 있다.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이 장막을 벗을지라도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이 장막에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탄식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는 것이다”(고후5:1-4)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 기준에 따르는 신앙관과 열심만으로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종교행위를 하면서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성경에서 말하는 부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는 말씀이 나왔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초보적 신앙관을 바탕으로 한 저의 신앙행위에 만족하는 사람이다. 그는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홀로 생각하며 신앙행위를 하다가 음부(αδες ; 하데스,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의 곳)로 갔다. 가난한 나사로는 이와 달랐다. 그는 저의 신앙이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새기며 몸으로 행하고 살아도 미약할 뿐임을 고백한다. 나사로는“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을 어이할꼬”라고 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이야 다른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마음 깊이 하나님이 제 안에 없는 것을 깨달아 돌아보며 믿음에 의지하여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부자야 너는 살았을 때에 네가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리라”(누16:25)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을 받으면, 자신이 부족하고 곤고한 사망의 몸을 지녔을 뿐이고 흙으로 빚은 본질상 땅의 성향에 물든 죄의 기미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예수께서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고 하신 것이다. 아픈 자야말로 병에 따른 고통이 절실하고 더할 수 없이 치유에 목마르다. 간절히 원하고, 저의 자리가 병자의 거처라는 것을 깨닫는 일부터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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