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전 9:23-27)
사도 바울은 자신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라고 표현했다. 또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도인 만큼 나는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롬11:13)라고 하였다. 바울은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도구인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었기에 구원의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도 거기에서 탈락되지 않길 간절히 원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신앙인들 중에서도 구원의 복음을 헐하게 여기며 습관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도 바울에게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소명인 것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전하는 직분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αναγκη ; 아낭케, 피할 수 없는 숙명) 할 일을 함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ουαι ; 우아이, 큰 슬픔)가 있을 것임이로다”(고전9:16)고 했다.
그는 이렇듯 구원의 복음을 확실히 깨닫고 신앙생활을 해나간 사도인데도 구원의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을 가졌다. 해서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기 위해 “나는 내 몸을 쳐서{(υπωπιαζω ; 휘포피아조, 눈 아래를 치다) 복종(δουλαγωγεω ; 둘라고게오, 노예감독이 되다, 노예로 삼다, 도구로 삼다)시킨다”고 하였으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라고 했던 것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고 거기서 제외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저주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세상에 三無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공짜요 둘째는 비밀, 그리고 셋째는 정답이라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도 공짜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은혜와 공짜는 다르다. 구원을 얻은 사람의 특징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나만 버림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바람직한 자기 돌아봄이다”이다. 바울이 율법 아래 있을 때는 남을 비난하고 정죄, 심판하면서 외적으로는 흠 없는 열심을 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을 알게 된 이후에도 주신 은혜를 핑계로 자유라는 미명하에 가치없이 방종의 삶을 사는 자가 되지 않을까 하여 신앙의 끈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아가는 은혜를 입고 사는 성도는 누구든 스스로 “내가 과연 구원 받은 사람일까?” 돌아보며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애쓴다. 바울이 고백하기를 “어찌하든지 죽은 자들 무리 안에서 부활에 이르려(κατανταω ; 카탄타오, 동사 가정법 과거능동. 부활에 이른 사람이라면)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신앙생활을 지금 이 순간 하는 것이다”(빌3:11-12)라고 하였다. 참 부활에 이른 산 자들은 육신의 생명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온전한 부활에 이른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살아갈 뿐이다.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세계에도 비밀은 끝내 비밀로 남지 않았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에 밝혀졌다. 그리스도를 통해 밝혀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타인이 천국을 만들어주기를 막연히 바라지 않고 스스로 나서서 자기 마음과 삶의 태도, 희생을 통해 제 안의 천국을 세워 주변을 밝히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정답은 없다. 그때그때 만나는 사람과 처한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사랑의 심정을 품고 동행하는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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