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롯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벧후 2:6-8)
성경에서 말하는 “의”를 두고 바울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사람의 개명, 윤리, 도덕 포함)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8), “일을(εργαζομαι ; 엘가조마이, 종교, 윤리적 사람의 수고) 아니 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5)라고 했다. 그리고 “아브람이 여호와를(하나님의 말씀)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15:6)에서 보듯이 성경이 말하는 ‘의’는 겉으로 드러나서 사람들이 보기에 의로운 행위가 아니다.
사람들은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속마음과 다르게 겉으로 의로운 행동을 꾸며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속마음을 분명히 아신다. 물론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로운 행위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진 자는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으로 의로운 행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간다.
베드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의롭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롯이 살았던 소돔은 어떤 곳이었는가?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사람들이 생각하는 환경 천국)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창13:10)고 하였다.
그리고“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사1:10-11)와 “그들(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라”(계11:8)고 한 것을 보자.
소돔은 환경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거기 사는 자들은 율법적인 자기 기준을 세우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도덕성을 지녔노라 자부했지만 하나님의 참 뜻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돔성에서 롯은 어떠했기에 의로울 수 있었는가?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창19:1)를 보면, 여기 앉아 있다가(야사브 ; 재판자로서-거주하다,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하다)라는 문구에서 그가 소돔성의 선생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롯이 아브라함을 만나 자신에게 당도한 하나님의 천사를 영접하고 말씀을 받아들여 소돔성의 선생 역할을 그만두었으므로 말씀을 통한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다.
여기서 소돔 백성들이 “롯을 부르고 롯에게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야다 ; 가르치다, 조언하다, 동침하다)하겠다 하자 롯이 청하길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대로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일도 저지르지 말라”(창19:4-8)고 했던 내용을 보자.
잘못 이해하면 소돔 백성들이 천사들을 겁탈이라도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에 이어서 보면, 저들이 한 말의 뜻은 소돔에 들어온 낯선 사람이 전한 교훈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우리가 훈계하고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롯의 대답은, 영접해서 내 집에 들인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 훈계하려거든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한 어린 두 딸이 있으니 너희 좋을 대로 가르쳐도 좋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의인이 된 롯의 심령은 상처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계명을 앞세우는 소돔 백성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한편 소돔 사람들은 새로운 사상이 저희 세상에 퍼질 것이 두려워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바울을 두고 율법에 충실했던 대제사장, 장로들과 유대인들이 말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퍼지는 속도가 거셈)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행24:1-5)고 했다. 그들에게는 그간 나름대로 굴러오던 사회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사고와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이 전염병처럼 무서운 존재였다.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당대 정치가와 기득권층의 행태를 보면 이런 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부패하게 만들며 자기들이 받들던 신을 부정하므로 불온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참 뜻, 거룩한 말씀일지라도 처음에는 이렇듯 배척을 당했다. 세상의 일과 사람의 행태가 새로운 것, 입에 쓴 것은 아무리 유익해도 우선 물리치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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