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선한 것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1)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분별하여 복음에 의한 믿음 생활을 해나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한 빌립보 교우들의 지식과 총명이 자라서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극히 선한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껍데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자 속에 담긴 사랑의 심정과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롬2:29), 영혼 구원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임을 의미한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소용없다. 그리스도인은 그 소중한 목숨을 이어가되, 지식과 총명을 전제로 지극히 선한 것 곧 구원을 위해 육체의 몸을 떠나기 전까지 있는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을 은혜의 기쁨으로 알고 누리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사람들이 믿노라 하는 신은 그저 채워야 할 배(腹)요 그 영광은 저들의 부끄러움에 있을 뿐이다. 저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니 그러하다. 지극히 선한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추구하며 하늘로부터 구원하러 오시는 주 예수를 기다리며 산다. 그분은 지극히 선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비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신다.(빌3:19-21)
벧후1:5-8절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하였다. 이런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지식은 일반적인 도덕적 원리를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총명은 그 일반적 도덕원리를 특정한 상황에 적절히 적용시킬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성숙한 지식과 총명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진다.
율법에 매인 사람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당신을 비난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3:1-5)고 하셨다.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는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도 말아야 한다. 성경을 온전히 받아들이되 하나님의 비밀, 진리의 성령 즉 보혜사가 제 안에 하나님의 모습인 그리스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처럼 구체화된 그리스도가 생활 속에서 표현되고 드러나게 되는 것을 지극히 선한 것이 분별(도키마조; 입증되다)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무릇 더러운(사프로스; 무가치한) 말은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오직 덕을(오이코도메; 듣는 사람 마음에 하나님 사랑의 말씀이 거하게 되는)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뜻없이 읽고 되뇌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에 따라 제 삶을 조직하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라고 하신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빌1:1-11)
바울은 빌립보 교우들이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분별하여 복음에 의한 믿음 생활을 해나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또한 빌립보 교우들의 지식과 총명이 자라서 사랑이 더 풍성해지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극히 선한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껍데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자 속에 담긴 사랑의 심정과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며(롬2:29), 영혼 구원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값진 것임을 의미한다.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소용없다. 그리스도인은 그 소중한 목숨을 이어가되, 지식과 총명을 전제로 지극히 선한 것 곧 구원을 위해 육체의 몸을 떠나기 전까지 있는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을 은혜의 기쁨으로 알고 누리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사람들이 믿노라 하는 신은 그저 채워야 할 배(腹)요 그 영광은 저들의 부끄러움에 있을 뿐이다. 저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니 그러하다. 지극히 선한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추구하며 하늘로부터 구원하러 오시는 주 예수를 기다리며 산다. 그분은 지극히 선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비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신다.(빌3:19-21)
벧후1:5-8절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라고 하였다. 이런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지식은 일반적인 도덕적 원리를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 총명은 그 일반적 도덕원리를 특정한 상황에 적절히 적용시킬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을 말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성숙한 지식과 총명을 전제로 할 때 더욱 의미 있고 풍성해진다.
율법에 매인 사람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당신을 비난할 때,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막3:1-5)고 하셨다.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는 줄 알아야 한다. 다만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에 그치지도 말아야 한다. 성경을 온전히 받아들이되 하나님의 비밀, 진리의 성령 즉 보혜사가 제 안에 하나님의 모습인 그리스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그처럼 구체화된 그리스도가 생활 속에서 표현되고 드러나게 되는 것을 지극히 선한 것이 분별(도키마조; 입증되다)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 “무릇 더러운(사프로스; 무가치한) 말은 너희 입 밖으로 내지 말고 오직 덕을(오이코도메; 듣는 사람 마음에 하나님 사랑의 말씀이 거하게 되는)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뜻없이 읽고 되뇌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성경에 따라 제 삶을 조직하고 다른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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