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녀를 기다리는 아버지
- 잃어버린 양, 드라크마, 아들 비유의 참뜻은,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밭에 신을 신기라 ~맏아들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15:1-32)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심정과 태도를 배우는 자들이 지녀야 할 것은 들려진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고 사는 믿음이다.
잃어버린 양은 목자의 음성을 따라서 동행해야 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놓쳐 길을 잃고 헤매고, 그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간절히 찾아다닌다. 목자 없이 길 잃은 양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잃어버린 양을 찾은 목자는, 죄인의 회개를 두고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한다.
결혼할 여자가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열 드라크마 중에서 나온 것이다. 한 드라크마는 하루 품삯에 불과하지만 열 드라크마는 신랑이 신부에게 넘겨준 결혼 예물이다. 신부는 열 드라크마를 예쁜 끈이나 연결고리로 엮어 신랑에게 받은 예물로서 혼인 예식 때 머리를 장식하는데, 그 중 한 드라크마를 잃었으니 신랑이 넘겨준 사랑의 증표를 단장하는 데 온전히 쓸 수가 없게 된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람에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를 보라.
두 아들 중 둘째아들은 어쩌다 잃어버린(아폴뤼미; 죽다, 잃다, 완전히 파괴하다) 아들이 되었는가? 그는 아버지 품 안의 사랑을 떠나 세상 향락을 먼 데로 찾아 나섰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상속 재산을 미리 챙겨 먼 나라로 떠나 방탕하게 살았고, 끝내 재물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궁핍한 형편이 되고 만다. 결국 남의 집에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는데, 돼지사료인 쥐엄열매로 배를 채워야 할 만큼 굶주려도 챙겨 주는 사람 하나 없는 비참한 처지에 놓인다. 둘째아들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품꾼 취급을 받더라도 아버지에게 돌아가자는 마음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망나니 아들을 받아들였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기까지 한다. 그것을 보는 맏아들은 노하고 분하여 기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품을 떠난 적 없는 맏아들도 역시 잃어버린 자인 것이다. 왜냐하면 맏(프레스뷔테로스; 이스라엘 산헤드린 회원, 기독교의 장로)아들(휘오스)이 외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종교인이라지만, 그가 아버지를 떠나지 않은 것은 그 사랑에서 멀어지기 싫어서가 아니라 다만 물려받을 재산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는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9:25)를 보라.
율법에 묶인 유대인들은 세리와 죄인을 조상 유전이나 율법 해석을 근거로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그야말로 죄인 취급을 하였다. 비유에 나오는 잃은 양, 잃은 은전, 잃은 아들을 죄인으로 여긴 것이다. 참 목자이신 아버지는 잃었다가 찾은 동생을 두고 기뻐하지 않는 맏아들에게 말한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버지 곁을 떠난 적 없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맏아들에게 “잃었다가 찾고 죽었다가 살아난 네 동생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네가 잃어버린 자이고 죽은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름다운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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