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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풀이

복음은 비난이 아닌 긍휼을 원한다 (마7:1-12) - 정광교회 박승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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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비난이 아닌 긍휼을 원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저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12)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은 그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3:20절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4: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함이라”, 고전15:56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를 통해 알 수 있다. 문자적 율법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출애굽 때 받았지만 그 이전에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양심이란 율법을 두셨다.

 

마음에 새겨진 양심 율법이 주관적이고 은밀한 것이라면 문자 율법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지각을 바탕으로 마음에 새겨진 양심 율법을 객관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고 하였다. 즉 땅의 흙으로 빚은 육체의 몸을 지닌 사람은 결코 율법을 온전히 지키거나 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2:14-15, 8:3-4)

 

 

연약한 육체의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하늘의 본성 곧 하나님의 뜻과 심정인 성령의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성령이 원하는 생활을 곧바로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5:17). 오히려 성령이 원하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음에도 육체는 여전히 성령의 원함을 알기 전과 별다름 없이 습관을 따라 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창세기 5: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고 고백하였다.

 

 

땅의 본성을 지닌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공급해주시는 성령의 말씀조차도 한낱 지식으로 여기게 되는 과정이 있다. 예수님 말씀대로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즉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말씀의 배움이 이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긍휼과 사랑의 마음가짐으로 나타나야 한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12:47)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자.

 

예수의 가르침을 바울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고전8:1-2절로 우상의 재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모세로부터 주어진 율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열심을 비난하려 하신 것이 아니다. 이들을 올바로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향한 열심,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하는 복음을 전하러 오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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