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4:3-18)
세상을 살면서 영혼의 양식과 영혼의 갈급함을 해갈시켜줄 그 무엇을 찾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양식이 없어 주린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한 것이 아니다. 여기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도 우물에 물을 길러 왔다고 한다. 여인을 만난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물(πινω피노 ; 마실 것)을 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네가 나에게 오히려 구하였을 것이요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생수(υδωρξων휘도르 존 ; 살아있는 물)을 주었으리라 하신다.
우물 물(θρεαρ프흐레알 ; 물을 모으기 위한 구멍)과 샘물(πηγη페게 ; 분촐되는 샘솟는 물)
우물가는 종교의 본질을 전해주는 장소인 교회나 사찰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 여인은 우물을 통해서 영혼의 양식을 구하려 하였으나 구할 수 없어서 갈급해 하던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혼의 양식은 우물을 통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샘을 통해서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물 속의 물은 모아 놓은 물(글,지식)이며, 샘의 물은 모은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고, 살고 있으며, 자신이 누리는 것과 샘솟고 있는 삶의 물을 말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7:37-39)하셨다.
생수, 살아있는 물, 삶의 근원을 해갈 시킬 수 있는 물은 성령을 말함이다. 그 성령은 성령의 지식을 담아 놓았다고 성령이 아니다. 성령이 솟아나야 하며 사는 자 옆에 있으면 함께 살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39-40)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상고하는 목적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영접하기 위한 과정으로 봐야지 성경의 상고가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성경을 통해서 성경이 말하는 자를 만나야하고 만난 자를 통해서 그와 같은 삶을 접붙임 받아 살아야 영생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다. 영생의 삶이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삶”을 말하며 주와 합하여 주의 성품의 삶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것을 가리킨다.
목자를 불러오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과 영생수의 샘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에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신다. 여자는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성도와 목회자의 관계에서 성도를 ‘양’으로 보면 꼴(풀)을 제공해야 하는 목동(목자)은 지도자이다. 한편 성도를 건축 재료로 본다면 지도자는 건축자가 될 것이다. 또한 성도를 여자로 보면 여자의 갈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할 지도자는 남편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자에게 너의 문제나 혹은 너의 갈급함을 해결해 주어야 할 네 남편 된 목자를 불러오라고 하신 것이다. 남편이 없다고 대답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신다. 여기에서 여자와 예수의 대화는 일종의 영적인 선문답이라 할 수 있다. 수가성 여인이 들을 귀가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샘물 이야기와 남편 이야기를 하신 것이다.
이 수가성 여인은 육신의 목마름을 위한 해갈을 위해서 야곱의 우물가에 왔던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물을 길을 그릇과 두레박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우물가에 다른 목적(선지자를 기다림)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겠삽나이까”(요4:11)를 보아 알 수 있다.
어디서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인생살이에서 사람들은 육체의 허기를 달래주는 떡으로만은 안되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하는 은혜의 갈등을 만나기도 한다. BC 760년경 선지자로 활동했던 아모스의 말을 통해 살펴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의 존재를 통한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마다 때와 기한이 다르겠지만 육신의 배고픔과 목마름과는 관계없는 영혼의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날이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영혼의 영생 떡과 영생수를 찾게 해줄 남편을 기다리기 위해서 야곱의 우물가에 서성이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진정 야곱의 우물가에 나와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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