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기를 빌라
(전도여행 중)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10:11-15)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머물라
전도여행을 할 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한 것이 비유라면 그것의 실례가 마을이나 성에 들어가서 합당한 자를 찾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이 있는 지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은 우리 곳곳에서 있다. 영적인 문제 때문에 유독 고민하고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을 발견하여 그 집에서 머물며 전도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농부와 밭으로 비유해 보자. 말씀을 전하는 농부는 씨 뿌리고 물을 주는 자다. 씨와 물을 받아들일 밭을 기경해 놓고 있는 사람에게 씨 뿌리고 물을 주어야지 그렇지 않은 자에게 그렇게 한다면 씨와 물을 낭비하는 셈이 되고 그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된다.
잡초만 잡초가 아니다. 곡식이 자랐으되 먹을 수 없게 자란 것이라면 그 곡식도 잡초일 뿐이다. 그래서 합당한 자, 즉 듣고 행할 자를 찾으라는 것이다. 듣기만 하려는 자는 신앙이 아닌 신앙의 대용품으로서 복음을 듣는 것이지 진정한 복음을 들으려는 것이 아니다. 전하는 복음이 오히려 듣는 상대를 더 악하고 교활하게 할 뿐이기에 합당한 자를 찾아야 한다.
※ 참고
*합당한 자(άξιος 악시오스 : 칭찬 받을 만한, 듣고 행할 자)
*찾아내어(έξετάζω 엑세타조 : 엄밀히 알아보다, 철저히 조사하다)
평안을 주고 평안을 받아라
복음의 결과는 평안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눅7:50) 혹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고 했다.
복음의 씨를 뿌렸는데도 상대에게 평안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그 상대는 잃어버린 양도 합당한 자도 아니다. 평안을 전해준 후에도 상대가 그 평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복음의 내적 평안이 자신한테서 더욱 커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상대가 평안을 받아들이게 될 때에는 평안과 더불어 기쁨과 감사가 자기에게 넘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반대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누구에게 화를 냈을 때 상대가 거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화를 낸 당사자가 더욱 더 화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복음의 평안을 내놓는 자가 상대에게 평안을 빌어주고 제공할 때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큰 평안이 자기에게 임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제의 삶에서는 내가 빌어주는 평안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나 자신에게 더 큰 평안이 임하는 것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말로는 상대에게 평안을 빌어줄지라도 평안을 비는 당사자인 내가 일상의 삶에서 평안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군가에게 화를 냈을 때 그 사람이 거기에 반응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더 큰 화가 치미는 것을 느끼기 쉽다. 그것은 나 자신이 일상의 삶에서 화(분노)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상대가 평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평안을 빌어준 자신은 그보다 더 큰 평안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상대적 우월감과는 관계없다.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기에 이런 평안을 영접하고 살 수 있는가를 실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넘겨주시는 것이겠지만, 우리들은 그 평안을 영접하는 것이다. 평안이 임한다는 것은 본인이 인식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접했기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 평안을 빌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평안을 받아들이라. 평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평안은 떠난다. 평안이 떠난 자에게는 허무와 낙심, 무가치함과 후회만이 남게 될 것이다. 평안을 받아들이면 진정한 쉼, 안식의 주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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