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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육체만을 위한 탐욕의 삶 (마10)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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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만을 위한 탐욕의 삶

 

"세상에 진리를 전파하는 것 때문에 군중들이 총독들과 임금들에게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10:19-23)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종말이 오게 되면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도덕이 무너지고 윤리가 타락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성경에서도 천륜(天倫)을 무시한 행위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옛날에 비해 현재의 도덕적 타락이 더 심한가?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더 많아졌는가?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는 일은 세상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항상 벌어진 것이다. 우리 역사만 보더라도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에 왕위 계승 문제 따위로 형제끼리 칼을 겨누고 아비가 자식을 죽이는 데 내어준 일이 허다하다. 그러한 일들은 인격보다 권력의 높이가 클 때 언제나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리키는 죽음과 세상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어는 같은 것이지만 쓰이는 바가 다르다. 세상의 죽음은 육체적 기능이 정지된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육체를 통해 하나님의 삶이 나오지 않고 육체만을 위한 탐욕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두고 죽었다고 한다. 형제가 형제를 생명으로 인도하고 아비가 자식을 영생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성령을 영접하지 않고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는지도 모르고 그런 일들을 벌인다는 것이다.

부모 형제를 죽는데 내어주는 것은……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성령, 진리, 말씀으로 해서 육체만을 위한 짐승 차원의 삶에서 떠나 보이지 않는 속사람의 삶(영생)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세상적 가치의 다소유무(多少有無)만 보고 살지 않고, 많을 때에는 풍부에 처하되 교만하지 않고 적을 때에는 궁핍에 처하되 비굴하지 아니하며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 다만 어떤 형편에서든 자족할 수 있는 내면의 가치를 갖고 살 수 있도록 진리와 성령의 삶을 전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릇된 진리와 거짓으로 형제에게 욕심을 심어주고 자식한테마저 종교의 미명 아래 거리낌없이 욕심을 전파한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는 데 내어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형제와 자식과 부모를 죽이려는 악한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선한 의도를 갖고 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선한 의도는 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지적한다. 이를 바울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은 아니다"(롬10:2)라고 했다.

타인이나 자기 가족을 위하려는 선한 의도에 앞서 자기 자신이 추구하는 삶이 과연 옳은지 우선 따져보고 백 번 천 번을 살펴보아도 이것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또한 내게 있어 확신이 있는 삶일지라도 타인에게 전할 때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례하지 않게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거짓으로만 죽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강요된 진리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진리는 무례히 행치 않고 소리 없이 스며드는 힘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사랑 가운데서 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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