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태이야기

몸은 죽여도 영적 목숨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마10) - 정광교회 박승현

728x90

몸은 죽여도 영적 목숨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27-33)

 

몸은 죽여도
성경은 겉사람인 몸의 목숨과 속사람인 영(의식 : 영적으로는 존재이지만 육체적으로는 의식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영된 의식은 '육체의식'과 구별된다. 눈을 통한 안식(眼識), 귀를 통한 이식(耳識), 코를 통한 비식(鼻識), 혀를 통한 설식(舌識), 몸의 감촉을 통한 신식(身識) 등 이 모두를 통합하여 사용하는 두뇌식(頭腦識)인 의식은 육체의식으로서 육체가 없어지면 같이 없어진다. 그러나 영된 의식은 육체가 없어져도 소멸하지 않는다)의 목숨으로 나눈다.

몸의 목숨은 태어나는 순간 죽을 것이 예약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영이 몸을 통해서 필요한 것을 배우고 익혔다면, 몸은 얼마나 살았는가 하는 시간과 무관하게 그 가치를 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서는 언제든 몸을 벗어나도 좋고 심지어 몸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유혹을 느끼기도 한다.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1:20-24)고 고백한다.

육체적 목숨은 기능성, 시한부적인 유한성(有限性)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영의 목숨도 몸이라는 한시적인 육체의 밭에서 태어나지 못하면 있어도 있다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목숨(영적 목숨)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말라 하신다. 이를 자칫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이 설명하는 하나님은 몸뿐 아니라 영혼까지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뒤에 이어지는 글을 보자. 영혼을 죽인다는 것은 몸을 죽이는 것과 달리 영혼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지옥의 상태에 빠져 있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또한 지옥의 상태에 있는 본인의 동의 없이는 꺼내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무례히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혼을 죽이기도 하시는 분인가?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영혼을 죽음의 상태로 몰아가더라도 이를 아무 때나 막지 않으시기에 결과적으로 어떤 영혼은 죽음(스스로 죽게 된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죽음은 육체 속에서 영혼의 씨가 발아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에 이르게 된다. 그 죽음은 육의 죽음과는 의미가 다르다. 죽음의 상태인 지옥, 즉 자기 스스로 그릇된 의식에 빠져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쉼 없는 고통과 고뇌, 원망의 무저갱에 빠져 있는 상태를 영혼의 죽음이라 한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진리에 대한 갈급함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 즉 세상이 추구하는 욕망의 푸른 초장에서 빠져나왔으나 좁고 좁은 길을 찾지 못하고 광야에서 헤매는 길 잃은 자들에게 샘물을 공급하시고 길이 되어 인도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25)라고 하셨다.

죽이는 것은 죽이는 것이 아니다.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자에게 자신들의 상태가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그릇되고 값싼 평화의 안주(安住)에 찬물을 끼얹는 방법을 쓴다. 찬물을 끼얹어줌으로써 눈 있고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그분의 은혜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