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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이야기

나를 시인하면 나도 시인하리라 (마10) - 정광교회 박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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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시인하면 나도 시인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10:27-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 말의 깊은 의도를 모르면 듣는 자나 말하는 자 모두가 바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내용이 담겨 있는 성경 구절 중 하나가 바울이 말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벙어리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성경을 쓴 이의 의도를 모른 채 표면적인 내용만을 보면 이렇게 오해하기 쉽다.

본문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옹졸하지 않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해야만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저희를 증거하시겠다는 말씀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 의도가 무엇인지 새겨야 한다. 사람 앞에서 예수를 시인한다는 것은 막연히 예수님이 스승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시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이제 그분의 말로써 그치는 게 아니라 나 또한 그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고 살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본문의 '시인할 것이요'라는 그리스어인 「호모로게오」(όμολογεω)는 막연히 내가 예수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와 함께', 즉 '예수와 함께' 시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예수를 시인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이라는 존재를 막연히 긍정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통해 그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분과 같은 맥락에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예수가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도 전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를 진정 시인하게 된 자는 예수님 때문에 그분이 전하는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통해서 처음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가 이제는 그분이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우물로 물을 길러 갔던 사마리아 여인이 수가성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소식을 전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가서 말씀을 듣고 난 다음 그 여자에게 말한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요4:42).

그들은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믿기 시작하게 되었지만, 진정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그 어떤 사람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친히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예수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와 같이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을 시인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나를 증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으면 그리스도의 말을 내가 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말은 곧 내가 원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갈2:20)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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