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주님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의 신앙을 두고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고 하였다. 그런데 성도들을 성전으로 삼고 싶은 주님은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 하고 문을 두드리며 밖에서 애를 태우며 서 계실 뿐이다. 말하자면 “너희는 왜 날 받아들이지 않고 있나”라고 하시는 것이다.
젊은 시절 영국 유학생이었던 간디가 한 교회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자 했을 때, 그 교회 사람들은 간디가 교회당 안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은 후 간디는 말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예수의 제자로 부르면서도 예수를 닮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간디는 위인이라고 추앙을 받을 뿐더러 “나는 그리스도 교도이자 힌두교도이자 이슬람교도이자 유대인이다”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간디의 발언으로 보자면 그는 자칭 그리스도인일 뿐이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교만에 빠질 수 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롬3:23)라는 바울의 말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온전히 전부 알지도 못하고 순정하게 그 길을 따라가는 일도 불가능하다. 비록 사람이 안다고 할지라도 육체를 가지고서는 제대로 살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이러한 일을 아시므로 창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시고 역사 안에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던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서 모욕하며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니”(요8:3-7)라고 했던, 너무도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여기에서“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내용은 호세아서를 제대로 알지 못하여 나온 오역이다. 비교적 정확한 번역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의 존재로(τον λιδον ; 톤 리돈) 그녀에게 던져졌다(βαλετω ; 발레토)”이다. 이와 관련해서 호세아서에서는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우상숭배, 간통)함이니라”(호1:2)를 주목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호3:1-3)고 말씀하셨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수아, 예수와 뜻이 같다.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인 고멜을 아내로 삼으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고멜처럼 타락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고 세상을 우상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태를 빗대어 비유로 나타낸 것이다. ‘보리쌀 한 호멜 반’과 ‘은 열다섯 개’는 예수께서 팔린 처지가 될 때 오갔던 ‘은 삼십’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이는 세상 음녀의 삶을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사들여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요8:7의 내용은 “내가 음녀된 여인의 신랑으로 예로부터 와서 그 여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더 이상 다른 신, 다른 남자를 좇지 않게 할 것이다”라는 데서 뜻이 명확히 드러난다.
간음한 여인 고멜은 너희를 상징하고 있고, 내가 너희의 신랑으로서 호세아처럼 찾아왔다. 그러니 내가 저 여자, 너희의 신랑인데 누가 저 여자, 너희를 정죄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고 구원하러 왔다”(요12:47)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속된 것을 친구로 삼아 무심히 살아가는 우리를 비난하시려는 것이 아니다. 속되고 타락해 가는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다시 사셔서 당신의 신부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당신이 은 삼십에 팔려 끝내 십자가를 지신 뜻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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