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1~8)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들은 바를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롬10:17) 그리고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고 하셨다.
누가복음 18장의 재판장과 한 과부의 이야기를 들어 그 과부처럼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반드시 주어질 것을 소망하며 낙심하지 않을 만한 믿음을 마음에 품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또 눅16~17장의 이야기를 전제로 보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뜻은 모른 채 다만 주인을 위한다고 하면서 잘못된 열심을 내어 받아서는 안 되는 이자를 받아 주인이 원치 않는 일을 한다.(출22:25, 레25:35-37)
더불어 눅17장에서 예수님 당시로서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 연자맷돌에 매여져 바다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족케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바다에 던져지는 죽음은 육신의 몸이 죽는 것이지만 실족케 하는 죄의 결과는 지옥에 던져지는 것이라고 일러 주신 것이다.(마10:28, 롬10:2-3, 갈1:8, 계21:8 참조).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17:3-4)고 하셨다. 믿음의 말씀은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근거로 끝없이 용서하는 사랑의 마음을 은혜로 갖게 되는 것이다. 사랑과 용서의 도구가 되어진 사도 바울도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2:10-11)라고 하였다.
결국 눅16-17장 이야기들을 근거로 제시한 믿음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야 누군가를 실족케 하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 용서하는 믿음을 지닐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믿음을 갖기 원하는 간절한 기도에 대해 설명해 주기 위해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을 비유로 들어 말씀해 주신 것이다.(롬7:24-25참조)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마음만큼 육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한이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진정한 원수, 원한의 대상이란 내게 해를 끼친 누군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육체의 소욕, 사망의 몸이다.(롬7:18-24, 고전15:26, 고전15:44, 갈5:17참조)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올바로 구하기 위해서는 낙심치 않고 항상 기도해야 하는 절실함을 지녀야 한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하니하고”(삼상12:23)라고 말한 바 있다. 예수님은 마 7:7-8절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는 응답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하나님의 심정과 뜻을 원한 맺힌 과부가 자기 삶의 전부를 걸고 구하여 해결 받기 원하는 것처럼 갈구하느냐는 것이다.
물질 세상에서 살아나가는 데 하나님의 심정과 올바른 뜻은 더디고 불편할 무엇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올바른 믿음을 구하고 누군가를 위하는 기도를 쉼 없이 하는 사명을 감사와 기쁨으로 수행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끼게 되는 직접적이고도 강렬하며 경건한 접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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