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을 보좌 앞에 내놓는 이십사 장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4:10-11)
면류관을 쓴다는 것은, 믿음의 올바른 삶을 살아온 결과로 그 이웃들까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가 내면에 가득 차게 된 것을 말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고 한 바울의 말처럼 바람직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을 면류관 쓴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면류관을 내놓는 행위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이 나의 수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15:10)에서도 보듯이 어떤 일이든 이룬 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과 주변사람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가지에 먹음직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으되, 그것은 이파리와 뿌리, 흙과 햇볕, 바람과 비, 농부의 수고가 더해져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면류관(왕관)을 다른 왕에게 던진다는 것은 승복(承服)한다는 표시인데, 하나님께 면류관을 내놓는 것은 당신을 최고의 주로 모시는 행위를 상징한 것이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1-3)라고 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삶이 생활습관이 된 것이다.
제자는 끝없이 배우고 익혀서 언젠가 스승처럼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때의 스승은 단순히 가르치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끝없이 배워 나가는 마음, 제자의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그런 마음과 태도로써 스승의 역할을 하는 자이다. 하늘 세계의 삶은 바울 혹은 성경이 일러주는 것들이 일상화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리는 이십사 장로
성경 첫머리 “태초(무엇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궁극적인 것)에 하나님이 천지(하늘과 땅의 의미를 넘어선 처음과 끝, 하나님의 처음이고 끝, 시작이고 마침이란 것을 결부하여 상고할 것)를 창조(낳고 기르고 완성하는 것, 지금은 창조 속에 있다) 하시니라”(창1:1)를 실감하게 하는 말씀이 계시록 4장 11절에 있다.
즉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실하게 인식한 사람들이 결국 제 삶 속으로 하나님 당신을 받아들여 당신과 하나 되어 살게 된 그 체험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사랑)은 나와 하나라고 하신다. 어떤 시인은 “나 자신이 누구인줄 모를 때 나는 하나님을 섬기겠고 내 자신(영적 존재)이 누구인줄 알고 나면 나는 이 육체를 통해 하나님 사랑의 한 부분적 역할을 할 것이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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