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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야기

빛 된 존재를 증거 하는 소리의 존재 세례 요한 (요1) - 박승현 목사님

빛 된 존재를 증거 하는 소리의 존재 세례 요한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 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요1:6-11)

성경에서 빛은 말씀의 존재, 생명의 존재로 표현되는데, 그 빛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곧 소리이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빛 된 존재와 소리된 존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소리였던 존재가 빛 된 존재를 발견해 나갈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소리를 팔아먹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아서 살아가는 종교집단의 행위자를 말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빛 된 존재이고 세례 요한은 소리된 존재라고 할 수 있으며 세례 요한은 소리를 팔아먹는 존재는 아니었다.

세례 요한을 평가 절하 해서는 아니 되겠으나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스스로가 자신은 빛 된 존재가 아니라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헤롯에게 정치적 발언을  함으로써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그 안에서 빛 된 존재라고 생각했던 예수가 자신을 위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자 자신의 제자를 예수님에게 보내 “그리스도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11:2-3) 라고 묻는 장면을 통해서 그가 빛 된 존재를 영접하라고 외치기는 하였으나 정작 자신도 빛 된 존재에 대한 이해력은 부족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마11:2-3).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과 같은 측면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자신이 진정 자신만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면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순수함과 열정은 있지만 지혜가 없다. 진정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자라면 자신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 하나님의 일을 더할 수 있도록 해주어 감사하고, 하나님이 자신을 돕지 않아 하나님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해도 그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하나님의 편이라는 것은 사랑, 진리와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을 위해 살아가게 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 즉, 빛 된 것들을 위해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되 타인이 그 빛 된 증거를 수용하지 않을 때 진노가 앞선다면 빛 된 존재가 아니라 소리의 존재이다. 물론 빛 된 존재도 소리를 통해서 증거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증거를 타인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 진노보다는 안타까움이 먼저 생긴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의 지혜로써 빛 된 존재가 자신을 빛 된 존재라 하는 순간부터 지탄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 빛 된 존재는 자신을 빛 된 존재라고 타인에게 떠벌일 필요가 없다. 그저 빛 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례 요한 스스로가 자신은 소리된 존재임을 밝힌 것은 순수하고 지혜로운 행동이다. 신앙 세계, 영적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순간부터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 성경을 보면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마3:1-3)라고 기록되었듯이 그는 천국을 지향했으나 천국이 어디에서부터 존재 하는지는 몰랐다. 선한 존재가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선한 존재 속에 천국이 찾아와 거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빛 된 존재를 외면하는 세상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였으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비슷하지만 또 다른 색깔의 순수함조차 없는 소리의 존재인 기성 유대교인과 그 추종자들에 대해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5:39-40) 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14:16-23참조) 고 말씀하셨다. 


천국은 존재하나 그 천국이 세속적 개념의 천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많은 종교인들은 세속적 개념의 천국을 꿈꾸며 소망이라는 이름의 욕심을 갖고 있다. 천국과 영생을 지향 할뿐 그 길로 한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장소적 개념의 ‘천국’이나 그 천국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들을 가리키는 ‘영생’이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영생’은 내면의 상태가 신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적 삶을 누리고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영생의 삶을 사는 존재를 가리켜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영”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세속적 개념을 가지고 “영”의 세계에 접근하려 하면 할수록 어려움에 부딪힌다. 세상 개념을 가지고 영생을 얻으려고 하고 천국에 가려고 하지만 영생을 얻을 수도 없고 천국에 갈 수도 없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되는것)” (요17:3)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롬2:6-7)라고 하셨으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3:14-15)라고 하였다.

영생은 얻는 개념 보다는 되어지는 개념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영생의 존재가 되어져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였으나 예수 시대의 세상은 여전히 자기 관념에 빠져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했으며 안타깝게도 현재도 그러하다.